화려한 오스카 시상식이 끝나고 단연 윌 스미스가 화제다. 하지만 그것은 그가 이번에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기 때문은 아니다. 현재 "윌 스미스 남우주연상" 보다 "윌 스미스 따귀"가 훨씬 더 많이 검색되고 있다.
윌 스미스가 전 세계로 생중계되던 오스카 시상식에서 사회를 보던 크리스 락의 뺨을 때렸다. 그렇다, 소위 "싸대기"를 날렸다. 크리스가 윌의 아내인 제이다의 헤어스타일(또는 탈모증)에 관한 농담을 했기 때문이다. 윌의 아내는 탈모증으로 인해 삭발을 하고 시상식에 참여 중이었다. 크리스는 그것을 두고 "제이다, 사랑해요. <지 아이 제인 2> 기대할게요!"라고 농담을 했다. <지 아이 제인>은 극중에서 여주인공이 삭발을 하는 영화다. 윌도 따라 웃는 듯 보였는데 제이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다음 순간 윌이 무대 위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크리스가 이를 알아 채고 웃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크리스도 아마 윌이 장난을 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거다. 하지만 다음 순간 윌의 오른 손이 크리스의 뺨을 내리쳤다. 이후 돌아 내려오는 윌을 보면서도 짜여진 각본에 따른 쇼인가 보다 했는데, 자리에 앉자 마자 윌은 "내 아내 이름을 니 x같은 입에 올리지 마!" 라고 두번이나 크게 소리쳤다. 웃고 있던 주변 배우들 표정도 어색하게 변했다.
제이다가 탈모증으로 인해 힘들어 했다는 걸 아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크리스의 농담이 부적절했다고 보는 의견이 다수인 것 같다. 하지만 윌의 대응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는 모양새다. 아내와 가족을 지키는 영웅적 행동이었다고 치켜세우는 사람들도 있는가하면 폭력을 사용한 것은 아주 잘못되었으며 이후 바로 윌을 시상식에서 내쫒지 않은 오스카 측도 잘못되었다는 사람들도 있다.
당신의 생각은?
======= 덧붙임 =======
사실 이 일은 재미있을 것 하나 없었고 안타까운 일이었다. 재미있었던 것은 이 일에 대해 각국의 언론이나 유투브 여론이 보인 첫 반응이 꽤 상반되었다는 점이다. 나는 이 소식을 한국 방송사의 서브 유투브 채널에서 처음 접했다. 그 영상도 크리스가 무리한 농담을 했다는 점에 중점을 두고 있었는데, 밑에 댓글은 대부분 더 노골적으로 크리스가 "맞아도 싸다."는 식의 내용이었다. 본인도 아니고 가족을 건드리는 농담에 윌 스미스가 화날 만 했고 애초에 부적절한 농담을 한 크리스는 맞아도 싸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미국 방송 영상을 몇 개 봤는데, 그곳 반응은 180도 달랐다. 대부분 전세계로 생중계되는 시상식에서 폭력을 휘두른 윌 스미스를 질타하는 내용이었다. 어떤 경우에도 폭력은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제이다의 탈모증은 치명적인 병도 아니고 크리스가 특별히 비하하는 농담을 한 것도 아니라고 보고 있었다. 미국 사람들이 제이다와 윌의 개인사를 더 잘 알고 있어서 그런지 "부인이 아들 친구와 바람난 것은 참을 수 있어도 농담을 참을 수 없냐?", "농담을 듣고 웃더니 제이다의 표정이 썩어들어가는 것을 보고 조종당하는 것처럼 돌변했다." 라는 식의 시니컬한 반응도 자주 보였다. "윌 스미스가 마음의 여유가 없어 보인다. 그럴만 하다. 안타깝다. 상담을 받아보는 게 좋겠다." 라는 반응도 보였다. 물론 "봐라, 이게 당신의 여자를 지키는 방법이다."라고 윌을 치켜세우는 인터뷰와 댓글도 있었지만, 그 상황에서 폭력으로 되받아치지 않고 "TV 역사에 길이 남을 날이 되었다." 라는 농담으로 마무리한 크리스가 프로다웠다고 칭찬하는 인터뷰와 댓글이 더 많았다.
이 차이에 대해서 미국 교포인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가 동갑인 우리 둘의 흥미로운 차이점을 알게 됐다. 그 친구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한 번도 학교에서 누가 누굴 때리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선생님이 학생들을 때리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학생들끼리도 싸우려고 빙빙 도는 모습까지는 딱 한 번 봤는데, 실제 때리는 것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선생님이 때리는 것은 수도 없이 봤고 실제 맞아본 적도 있으며, 학교에서 애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는 것 역시 많이 봤을 뿐 아니라 초등학생 때는 육탄전에 휘말린 적도 있었는데...... 다른 한국인 친구가 "너가 좋은 학교를 다녀서 그런 거 아니야? 미국이라고 해서 아이들의 본능이 다를 것 같지 않은데. 미국 영화에서 싸우는 장면을 본 것도 같고."라고 해서 그 친구가 다른 학교 출신 친구들에게도 물어봤는데, "우리 아버지 때는 학교에서 싸우는 일이 많았다고 하던데, 나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했다. 우리나라도 지금은 학교에서 선생님이 체벌을 하는 일이 거의 없고 아이들 사이에서 폭력이 오가도 아주 큰 문제가 되는 것 같던데, 이 점에 있어서는 한국과 미국 사이에 한 세대 정도의 차이가 있는 건가 싶었다. 인간의 본능은 별반 다를 게 없지만 어릴 때부터 작은 폭력도 크게 터부시하는 환경에서 자라 미국인들이 상대적으로 폭력에 크게 반응하는가 싶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워낙 넓은 곳에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총기사건이나 인종혐오범죄 등 어마무시한 사건이 비교적 자주, 많이 일어나다 보니 관련 문제에 대한 논의가 오래 전부터 활발히 일어나 반폭력 교육에 더 신경쓰고 관련 사회적 인식도 강화된 건가 싶기도 했다.
나중에 일본 유투브 채널과 중국 비리비리 채널에 있는 각국 시청자들의 반응도 찾아봤다. 일본은 한국과 비슷하게 크리스가 "맞아도 싸다."는 반응이 주였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나선 윌이 "멋있다."는 반응도 종종 보였다. 중국은 어느 쪽이 대다수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는데, 흥미로운 점은 "역시 미국인은 이상하다." (응??) 라는 반응이 종종 섞여 있었다는 점이었다.ㅎㅎㅎ 그 중 특기하고 싶은 코멘트는 "미국은 크리스가 먼저 부적절한 농담을 한 것은 보지 않고 윌 스미스가 뺨을 때린 것이 잘못되었다고 난리다. NATO가 러시아 턱 밑까지 무리하게 확장하려 한 것은 보지 않고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켰다고 난리치는 것처럼." 이었다. 연예계 가십을 들여다 보다가 국제정치를 만났다.ㅋㅋㅋㅋ...살짝 반가웠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신이 나서 할 때 어떤 친구는 "나는 지금 너가 하는 이야기에 전혀 흥미가 없어." 라고 퉁명스레 말했지만, 나는 이런 차이를 알아채고 그 배경요소를 탐구하는 것이 너무 재밌다. 앞으로는 그냥 여기다 주절주절 대야겠다.ㅎㅎㅎ
며칠 후 다른 한국 채널에 관련 영상이 떴길래 눌러봤더니 웬걸? 댓글의 주된 반응이 바뀌어 있었다. 크리스가 무리한 농담을 하긴 했지만 폭력을 쓴 윌이 잘못했다는 방향으로... 영상도 그런 뉘앙스였다. 뭐지... 숨어있던, 부끄럼 많이 타는 다수가 영상에 힘입어 나타난 것인가... 아니면 외국 언론 및 여론의 영향으로 좌표 조정이 된 것인가...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우리 나라 사람들은 '외국의, 외부의 사람이 어떻게 보느냐'를 꽤 중요시하는 것 같다. 요즘 차고 넘치는, 가끔 왜곡도 포함된 소위 "국뽕영상"의 개수와 높은 조회수가 이 점을 보여준다. 조회수가 높고 댓글 반응이 좋으니 이런 영상이 자꾸 만들어지고 소재가 떨어지면 다른 나라에서도 일어나는 좋은 일을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일인 양, 외국에서의 작은 반응을 아주 큰 반응인 양 왜곡하여 영상을 올리는 것이다. 대부분의 시청자는 직접 그 나라 언론이나 여론을 접할 일이 없으니 그것이 사실인 양 확대재생산 된다. 나중에 이것 관련 글도 하나 써봐야겠다. 작은 나라인데다 외세의 영향을 많이 받아온 나라고, 또 부유하고 강대한 주변국들을 동경하고 그들과 스스로를 비교하며 그들을 좇아 발전을 이루고자한 나라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간 경제적으로든, 문화적으로든 많이 성장했고 이 위치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 그런 경향도 줄어들지 않을까...싶지만, 옆집에 너무 거대한 존재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 어떨지 모르겠다.
'에세이가 되고 싶은 잡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본어로 공식 서한(편지) 작성하기 (포맷 등) (0) | 2022.08.17 |
---|---|
나의 소울 푸드, 배추국 (+ 배추국 만드는 법 레시피) (0) | 2022.08.15 |
Uh... Pardon Me? (0) | 2022.08.15 |
일본어 왜 배우셨어요? (0) | 2022.08.14 |
먹는 걸로 쇼크 주고받은 이야기 (1) | 2022.04.01 |